21살, 대학생, 연극학도
더워 죽겠는 6월 27일 오후, 익명의 인터뷰이와 서울역 앞 작은 카페에서 시끌시끌하게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자기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21살, 대학생이고요. 연극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연극을 공부한다는 게 어떤 의미예요?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연극이론과 비평, 분석을 배우는데 보통 비평을 위주로 배우고 있고, 앞으로 계속 배우게 될 거예요.
실기는 안 배워요?
앞서 배웠던 것들이 실기로 들어가면, '드라마트루기' 혹은 '드라마터지'라고 불려요.* 그리고 이걸 하는 사람보고 '드라마트루그' 혹은 '드라마터그'라고 해요.* 쉽게 말해 연극 프로덕션 내부의 비평가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연극의 대본 선정부터 그에 대한 배경지식을 이용해 어떻게 연극의 콘셉트를 잡을지, 배우 캐스팅이나 무대 연출,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홍보 등 공연의 전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이에요. 한국 연극계에서 생소한 존재였지만 최근 들어 프로덕션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고 해요.
*dramaturgy, dramaturge
그럼 일반적으로 졸업 후 진로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다양하죠. 근데 아무래도 과에서 주로 연극관련해서 글 쓰는 걸 하니까, 그쪽으로 많이 나가는 것 같아요. 과에서 양성하고자 하는 건 '공연비평가' 혹은 '드라마터그'. 저는 이제 1학년 1학기 끝났고, 전공 수업을 많이 들어보지 않아서 구체적인 생각은 없어요.
학교가 예술 학교잖아요. 교양 수업 같은 건 다양해요?
폭이 좁긴 해요. 과학이나 체육 같은 건 거의 접하기 힘들고, 교양이 있어도 예술과 접목된 강의들이 많죠. 그리고 듣기론 전보다 교양이 더 축소됐다고 들었어요. 왜냐면 다른 학교랑 공동교양이란 걸 하는데, 그 학교 교양수업을 수강할 수 있다 보니 저희 학교 자체에 있는 교양의 종류는 더 줄었다고 하더라고요. 실질적으로 타 학교 강의를 듣는 사람이 많지도 않아요.
원래 다른 대학을 다니다가 그 학교를 자퇴하고 지금 학교에 신입학을 했는데, 원래부터 편입이나 자퇴하고 학교를 옮길 생각을 했었어요?
아뇨.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 연기를 하면서 대학 수시도 다 연기 전공으로 지원했었는데, 하다 보니 '나는 안 되겠구나.'하고 입시 준비하면서 '이 학교들은 정말 입시를 위한 연기를 요구하는구나.' 이런 생각도 했다가 나중에는 저 자신이 부족했다는 걸 많이 절감했죠. 전에 다니던 대학에서는 미술사학을 공부했는데, 예전부터 미학이나 예술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과에 들어간 거에 대해서 큰 아쉬움은 없었어요. 고등학교 선생님들도 연극은 다 취미로 하라고 했었고, 저도 그 의견에 수긍했죠. 그리곤 대학교에서 연극동아리에 들어갔어요.
그게 기폭제였구나.
사실 연극동아리 들어가는 거 자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컸는데 들어가기가 힘들더라고요. 결국엔 들어가서 공연 보러 다니고 연극하니까 '나 어쩔 수 없이 이거 해야겠구나.'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동아리 사람들이 너무 좋았어요. 그 영향도 큰 것 같아요. 그리고 대학에서 과제 때문에 미술관을 되게 많이 다녔는데, '연극 배우면 연극 공연을 엄청 보러 다니겠지? 진짜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1학기 종강하고 나서 고등학교에 갔었는데 선생님들이 꿈을 크게 가지라고 얘기하셨어요. 아마 선생님들이 하신 얘기는 그 때 다니던 대학보다 더 상위권의 학교를 가라는 의미였던 것 같은데, 저는 자의적 해석을 했죠. ㅋㅋㅋ. 그렇게 좀 더 마음이 확고해졌어요.
그럼 1학기 종강하고 새로 학교 입학을 준비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 거예요?
사실 10월 초에 다른 대학 연극과에 붙었었고 지금 학교 시험은 11월 말이었어요. 그래서 지금 학교를 위한 준비라고 하면 다른 학교 붙고 난 후에 1차 시험 대비해서 기출문제 푼 거. 2차에는 지정 희곡 분석하는 게 있었는데, 예전부터 읽던 희곡이 지정 작품 중에 있어서 다행이었죠. 그리고 연극을 많이 보러 다녔던 거랑 대학에서 연극동아리 활동했던 게 도움이 많이 됐어요. 2학기 휴학 안 하고 동아리 활동 계속했거든요. 전부터 해오던 것들이 도움 준 게 컸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먼저 붙었던 학교는 학생부 교과전형으로 지원했던 거라 학생부 내용에 대해서 준비하고 면접을 갔는데, 되게 편하게 연극 얘기만 하다 왔어요. 학생부 얘긴 잘 안 하고요. 연출 전공에 지원했으니까 '연출가에겐 어떤 자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어떤 연극이 하고 싶냐' 이런 질문을 받았었는데 동아리하면서 느낀 거랑 평소에 하던 생각 얘기하고. '최근에 본 연극이 뭐냐'에도 되게 편하게 면접관이랑 대화했어요. "저번 주에 뭘 봤다.", "그거 봤냐.", "제 생각엔 이런 부분이 어땠던 것 같다." 뭐 이런 식의 대화.
연극을 많이 본다니까 물어보는 건데, 저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작품을 봐도 큰 감흥이 없는 작품이 더러 있어요. 본인도 그러나요?
그럼요. 저도 학교 와서 느낀 건 사람들 생각이 정말 많이 다르다는 거예요. 다 다른 삶을 살아왔고 아는 것도 다르고요. 학기 초에 연극을 보러 갔었어요. 만든 사람도, 극장도 유명했는데 제가 느끼기엔 진짜 별로였어요. 근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 후로도 계속 느꼈죠. 사람마다 느끼는 게 정말 다르구나.
그럼 본인이 좋았던 공연은 뭐가 있어요?
<게릴라 씨어터>라는 연극. 작년 서울연극제에 올라왔을 때 보고, 올해 공연 때도 봤어요. 기본적으로 휴머니즘을 다루는 게 좋았고, 제가 기억하기론 작가가 '어떻게 저렇게 용감한 척 하며 살 수 있을까.' 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대요. 평범한 사람들이 용감한 게릴라가 되어 죽었어요. 사실은 다 보통 사람들이었는데 말이에요. 보고 나서 5.18 같은 게 떠오르기도 했고요. 연출적인 면에서 연극이기에 가능한, 마법 같은 순간들도 좋았어요.
또, 최근에 학교에서 레퍼토리 공연(학교 선생님들이 연출하는 공연)으로 <독>이라는 공연이 있었어요. 저희 학교 졸업생으로 이루어진 극작가 집단에서 쓴 단편 희곡 중에 선생님들이 8개를 골라서 희극 4개를 <하얀 독>, 비극 4개를 <까만 독>으로 나눠 공연을 했어요. 극 자체도 좋았고, 창작 집단이 한 팀을 이루어서 공연을 한다는 게 제 이상이라서 좋았던 것도 있었어요.
창작 집단이라는 이상은 어떻게 가지게 된 거예요?
고등학교에서 활동했던 연극동아리가 따지고 보면 약간 저런 형태였어요. 뚜렷한 구분 없이 다 같이 만들어가는. 근데 그게 되게 좋았어요. 그러다가 '양손 프로젝트'라는 집단을 통해 '창작집단'에 대해 알게 됐죠. '누가 연출이고, 누가 배우다.' 이런 구분 없이 공연을 만들어 나가는데 작품이 되게 좋아요. 그리고 <노래하듯이 햄릿>이라는 공연을 봤었는데 이 극은 '뛰다'라는 공연 창작집단에서 했어요. 이 극단은 다 같이 강원도 합천에 있는 폐교를 예술 텃밭으로 바꾸고 그곳에 상주하면서 연습하고 마을 사람들이랑 같이 공연도 한다더라고요. 이런 측면도 되게 좋았어요. 우리나라가 서울에 문화적인 게 거의 다 몰려 있잖아요. 그래서 지역문화가 개발되기 힘든데, 여기서 창작 집단이 할 수 있는 역할이 클 것 같아요. 그래서 창작 집단이라는 것에 관심과 이상이 생긴 것 같아요.
고등학교 생활이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은데, 대안학교를 다녔잖아요. 어떻게 다니게 됐어요?
엄마 친구 아들이 대안학교를 다녀서, 엄마가 얘길 많이 듣고 저한테 전해줬어요. 그리고 제가 인문계를 가게 된다면 동네에 있는 남고를 가야했는데 그게 싫었어요. 머리도 밀어야 하고. 그래서 엄마가 알려준 고등학교를 찾아봤더니 괜찮더라고요.
고등학교 생활은 좋았어요?
정말 개인차인 것 같은데 저는 좋은 점을 많이 찾아서 가져간 편이지 않나 싶어요. 동아리랑 행사도 많이 하고요. 바쁘게 살아서 얻은 게 많았던 것 같아요.
그 학교 간 걸 후회한 적은 없어요?
교복을 입지 못 한 것에 대한 아쉬움 정도? 근데 학교생활에 대한 아쉬움은 누구나 다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굉장히 잘 간 것 같아요. 이 고등학교 안 갔으면 지금 이 학교 올 생각을 못 했을 테니까.
화제 전환을 해서, 따끈따끈한 사회 소식에 대해 이야기 해봅시다.
어제(15.06.26) 미국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 됐는데,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완전 잘 됐죠. 우리나라도 LGBT에 대한 인권신장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근데 급하게, 빨리는 말고 사회 인식이 충분히 개선된 상태에서 제도적 변화가 이뤄졌으면 해요.
근데 그 사회 인식이 개선됐다는 기준도 애매한 것 같아요. 오히려 제도를 먼저 변화시키고 나서 사회적 인식을 만들어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네요. 제 생각이 부족했네요. 그리고 제가 요새 계속 느끼는 건 LGBT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고 해도, 그렇지 않은 부분이 아직도 되게 많다는 거.
그렇죠. 개선되고 있긴 한데 한참 먼 것 같아요. 잘못된 인식이 만연해 있는 상태에서, 정도가 심각해질 때를 제외하고는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 못 하고 있죠.
우리가 많은 것에 무감각해져 있는 것 같아요. 앞서 말한 것도 그렇고 외모 지상주의나 대기업 독식 같은 것도 그렇고요.
이런 무감각 자체가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이런 문제점을 알면서도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는 거 같아요.
저도 그래요. 앞에서 외모 지상주의 얘기했는데, 저 얼빠예요. (얼빠 : 스타의 얼굴을 보고 좋아하는 팬들을 지칭하는 말)
다른 고민 같은 거 있어요?
최근에 '내가 너무 연극만 본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도 안 보고, 책도 별로 안 읽고. 사람이 좀 편협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전 분야를 넘나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타 전공에 대해 무지해지고 편협해진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오히려 고등학교 땐 영화도 많이 보고, 공연도 보고, 책도 읽고 그랬던 것 같은데 말이에요.
저도 비슷한 거 있는 것 같아요. 전 사회에 대한 공부를 하다보니까 무슨 얘길 하든 뭘 하든 그쪽으로 생각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쉽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거에 대해서 저 혼자 민감해지는 게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근데 그런 건 약간 필요한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집단 속에서 제가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맞아요. 다수 속에서 눈치 보지 않는 거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저도 그렇고. 하지만 모두가 무감각해져버린 부분에 대해서 그렇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계속 되새기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사회를 공부하고 예술을 공부하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우리 더 노력해야겠네요.
앞으로 하고 싶거나 바라는 게 있나요?
독립. 하루 빨리 독립. 최근에 통금이 생겼어요. 늦게까지 술 많이 마시니까 부모님이 너 건강 나빠진다고 그런 거긴 한데 어쨌든 전 구속받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공연도 하고 싶어요. 물론 그 전에 공부를 해야겠지만.
이번 방학 땐 뭐 할 거예요?
놀 거예요. 통금 때문에 조금 차질이 생기긴 했지만 어쨌든 놀 거예요. 수영도 할 예정입니다.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저는 작년 2학기가 되게 행복했어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동아리 사람들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연극을 했기 때문에요.
인터뷰가 길었네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터뷰어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확신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물론 저도 입시 준비할 때 확신이 없었지만요. 그냥 자신을 과소평가 하지 말았으면 해요. 생각보다 많은 게 자신의 안에 있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저랑 함께해주고 이해해주는 사람들한테 고맙네요. 1학기에 힘들었거든요. 배우는 건 행복했는데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곳을 다닌다는 게 힘들더라고요. 물론 그 사람들과 아직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제가 버릴 사람들도, 절 버릴 사람들도 아니지만요. 그리고 지금 우리 과 사람들, 동기들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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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년 7월 9일
위 글은 블로그 플랫폼 이전에 따라 옮긴 글입니다.